57. 천부경 현토강연을 듣고 곧 모덕사를 가서 제향에 참석하였다. 현계세(현재의 말세)에 윤상을 고취하는 이런 거조는 만월공의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면암 선생의 역사는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니 기록할 필요 없고, 당일 행사는 평시 숙습이 없는 의유행속(선비의 옷을 입고 속된 짓을 행함)에 별별 인물들이 다 있어서 나는 예에는 문외한이나 고성 말씀에 곡례삼천에 일언이폐지왈무불경이라고 하시었는데, 제례의 경의보다 평시 소양이 없는 실산이 자주 보인다. 비록 금일이라도 좀 습의라도 하고 행사하였으면 이런 실수는 없을 것 같고 대체로 보아서 구두로는 예설을 알지 모르나, 몸소 예절을 행한 인물이 귀하였다는 것이 참기한 우리의 공통된 관점일 것이다.(주석 52) 중국 수나라 말엽 농민반란의 영수. 농민 출신(573621). 성품이 검소하고 관대하여 선비를 중용하였다. 나중에 이세민과 싸워 패한 후 피살됨.자중자수유사자이도리라세인막탄진도난하소신묘(1951년) 9월 20일 봉우서우유신정사(풀이)격세(풀이)미지차신지재어하처하고내가 일생을 통해서 범과가 되는 줄 알고 범한 것은 색계밖에 없다. 그 외에는 재상(재물 관계)이나 다른 일이나 양심이 허락 않는 일을 착수해 본 일이 없다. 재상 외에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실수한 일은 있으나 고의로는 1건도 양심에 허락 안되는 일을 한 일은 없다. 그러나 내 본성잉 소어계활(생활에 소홀함)해서 생활고를 받고 있는데 나 같은 무재무능한 사람으로 생활고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소호도 불만감은 없다. 그렇다고 안빈낙도하는 덕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원천우인(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함) 안 할 정도다. 말하자면 곤란이 내 대가려니 하지, 불평불만이나 인내 못할 지경은 아니다.87. 가족들 각자의 불평을 추상해 보자내 나이 겨우 20세에 이 사람을 사귐에 한 번 보고 친구 되니 이후 어언 20여 년에 늘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로 공경하매 오직 서로 실수할까 두려워하고, 한 번 만나 마음을 논함에 자는 것을 잊고 먹지 않으며, 옛과 지금을 통해
이 사람의 죽음은 실로 우리들의 운명이 절뚝발이처럼 기구함에서 비롯되었으니 하늘이 이 사람을 죽였네. 하늘이 이 사람을 죽였네.현 우리나라의 행정이 복받을 만한 선정이 못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의 초중년대나 또 우리 선배들이 이 나라에서 복받을 만한 일을 못 했던 관계로 현 정치인의 머리에서 선정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들부터 경서해서 하늘의 대가로 주신 곤란을 감수하며 후진들의 장래를 위하여 우리들부터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간의 선행으로 인심, 천심을 합치시켜서 온 우주에 긴 춘화가 오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리하여 묵은 우주사를 다시 개편해서 장춘세계 건설사로 바꾸자는 내 소회다.진승과 오광의 무리는 각축장이 개시됨에 지나지 않고, 정장과 백왕은 결승의 거두이나 초한의 승부는 이미 방량이 처음 운산(산대놀림)할 때 나 있었던 것이요, 해하의 싸움 때문이 아니다. 운주자(산대를 놀리는 이)가 주역이요 결승자는 그 다음인 것이다.(주석 32) 쟁깃술 끝에 맞추는 날. 원래 나무로 했으나 후세에 철제로 함. 사: 보습 사그러고 보면 백옥이 사십구년지비를 각하였다 하더니 나는 과거 52년간 산적한 비 중에서 대표비만 38을 기록해 본 것이다. 비를 각한 것도 아니요, 지한 것도 아니요, 과거를 추억하며 기록해 본 것이다. 기록하자니 이 비 저 비가 서로 선출권을 다투는 것을 다 정지시키고 대표로만 기록해 보았고 이상보다 훨씬 큰 비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지기지비(자신의 잘못을 앎)라는 것이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부언해 둔다. 나는 이것이 대표비거니 하나 타인은 내 단처가 이 이상 더 큰 비점이 있을 것도 잘 아는 바다.2. 내 이념 이라는 책자 중에 우리의 직업은 무엇으로 할까 라는 것을 갱초해 보자35. 가을밤 홀로 앉아그러니 극성즉쇠(창성함이 극에 이르면 쇠함)하고 극쇠즉성(쇠함이 극에 이르면 창성해짐)하는 원리로 보아 아마 머지 않아서 성세, 치세(태평성대)가 나올 조짐이 아닌가 하고 이 흑암중에서 미리 명분을 바로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