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치죄는 뒤에 내가 감당할 것이로되 허준의 손목을 다시 올려라 .유도지라네.김판관은 그 손을 멈추시오!온 세상 병든 모습을 향해 돌아오는 건 후회뿐이었다. 비록 겪어내지는 아니했으되 그래서 염병에 대처하는 경험의 축적이 없으되 허준은 지금 자기가 향해 달리는 이 길이 의원으로서의 자신의 앞길에 커다란 전환이 되는 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외길인 듯하오니 잠시 쉬어간들 길을 잃을 염려는 없사옵니다.허준이 공빈과 생살여탈권을 걸고 병자의 구안와사와 반위를 낫우어 놓겠다 한 그날 .비단 삼남에서만 있었던 사실이 아니다.소용되는 것들 소녀가 챙길 것이니 우선 집에부터 다녀오소서.하고 허준은 자신에게 반문했다.구경꾼들이 와르르 웃었다.그래도 가옵니다.조소가 지워지고 양예수와 김응택의 얼굴에 시기가 피어올랐다.저 아이와 의원이 주고받은 말 밖에서 다 들었소. 잠시 저 아이가 궐내 법도를 잊고 행한 일이니 의원은 내 낯을 보아 불문에 붙여주오.그러나 양예수는 열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하와라니?전하께오서 기다리시오니 더 지체하지 마오.돌아가오. 그리고 그 아우의 병이 다 고쳐지면 그전 다시 우리가 병을 칭탁해 부를 테니 꼭 오오.어찌 추호인들 그런 마음을 먹으리까. 소인은 어의께오서 밝히셨듯이 이 병자가 혜민서 병자와는 체질이 다르다 하는 것과 병원이 위의 무력함에서 왔다 여기어 차제에 위병까지 낫우려 하와 .욕심만이 아닌 하나의 실천으로.1혜민서의 허준을 보고 감동한 것은 자기다. 정작은 오늘까지 그러한 치열한 의료행위를 본 적 없다. 정작은 그 감동을 인사권이 있는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선조 10년 5월 공빈이 죽었다.육조 넓은 뜰에 왜적의 그림자는 아직 없었다.근자 있었던 얘기를 다 들었소. 어의가 허직장의 의술을 내 아버님의 성명과 싸잡아 매도할 제 한사코 반박했다는 그 말을.허준이 미사에게 이르고 짐을 둔 쪽으로 뛰었다.내의원의 상하가 들끓다니 누구누구의 동정이 그러하단 말인가?사흘 약조를 할 때 허준이 내세운 약속, 병자가 접하는 일체의 음식을 자기가 용인하
벌컥 방문이 열리며 김병조가 달려나왔다.지시받은 김병조가 조소했다.그렇다면 생각해 보오. 지금 허봉사가 맡은 저 병자는 미구에 임금의 외숙이 될 인물이오. 역대 부원군 가계의 외척처럼 막강한 권신들이 없다는 건 너나없이 아는 이야기.얼마 뒤 새 직장에서 다시 1백만 원을 마련, 정식계약서와 함께 건네주고 그 회사 총수와 함께 수 차례 만나면서 집념의 소설화를 밀어대고 추궁하고 했지만, 몇년간 그는 끝내 소설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지 못한 채 계약금을 반환하였고, 나는 1984년 여름 언론계로 다시 돌아왔다. 그 계약금 1백만 원을 두번째로 다시 돌려받은 것 또한 나에게 여지껏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 회사에서의 반환 성화가 드세기는 했지만, 왜 내가 나 혼자 그 정도는 끝까지 감당할 옹찬 뱃심이 없었는지 여태 부끄러울 따름이다.그 통제의 내용은 정기적인 것으로는 한 해가 저물기 전에 가 뵙는 동지사, 새해가 열리는 정초에 가 뵙는 정조사, 황제의 생탄일을 축하차 참례하는 성절사, 황실의 중요 제사에 맞추어 가는 천추사 .임해군, 광해군 두 왕자를 데리고 궁정을 소요하며 쓸쓸해하던 선조는 새로 사랑을 쏟기 시작한 인빈이 부를 낳고 의안군 성과 그토록 기다리던 딸 정신옹주와 정혜 옹주 등 다산하니 왕실에 있어 공빈은 완전히 과거의 사람이었다.아직 생모와의 사별의 아픔을 다 알지 못하는, 때에 세 살이던 광해군은 뒤에 보좌에 오르자 어머니의 무덤이 너무 초라한 것을 슬퍼하여 그 즉위 5년에 성릉이라 무덤이름을 높여 어머니를 기렸으나 인조반정을 만나 그 성릉은 다시 성묘로 강등당하고 유배지 제주에서 그 소식에 접해 대성통곡하던 광해군은 그 자신도 한라산 아래서 숨을 거둔 지 21년이 지나 군장골 어머니의 낡은 무덤 곁에 이장되어 백골이나마 함께 누울 수 있었다.칠백예순다섯이오.이번 일 아무래도 허봉사가 오진한 듯하이.나도 뜻밖이오. 이번 신성군의 그것은 가히 치료라 할 수 없는 가벼운 증상이었소.허준은 눈을 씻고 다시 한번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었다. 왜병이 아니었다.